취향으로 정해도 되는 것,
정하면 안 되는 것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 대표님 취향이 문제인 경우는 드뭅니다. 문제는 취향 말고 기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준이 없으면 모든 결정이 취향으로 내려오고, 취향으로 내린 결정은 다음 사람이 다시 취향으로 뒤집습니다.

수정이 끝나지 않는 자리

시안을 놓고 앉으면 나오는 말은 대개 비슷합니다. "이건 좀 밋밋한데요." "여기 허전하니까 뭘 좀 넣죠." "저 사이트처럼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전부 진심이고, 대개 틀린 말도 아닙니다. 다만 이 문장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으면 반박도 취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다음 라운드에는 상대의 취향이 올라오고, 그다음엔 주변에 보여줬더니 나온 제3의 취향이 올라옵니다. 그렇게 수정 횟수는 늘어나는데 사이트는 좋아지지 않습니다. 방향이 바뀐 게 아니라 매번 다른 사람의 인상을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신규 브랜드일수록 이 소모가 큽니다. 자기 사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대표님인데, 사이트에 오는 1순위 방문자는 그걸 하나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대표님이 읽기 편한 문장은 이미 다 아는 사람의 눈으로 읽은 문장이고, 대표님이 허전하다고 느끼는 화면은 그 내용을 백 번 본 사람이 느끼는 허전함입니다. 처음 온 사람에게는 그 화면이 이미 충분히 빽빽할 수 있습니다.

취향은 재료를 고르는 데 씁니다.
순서를 정하는 데 쓰면 안 됩니다.

항목별로 결정권을 나눕니다

취향을 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항목은 취향으로 정하는 게 맞고, 어떤 항목은 아닙니다. 그 선을 미리 그어 두면 회의가 협상이 아니라 결정이 됩니다.

  1. 무엇을 먼저 보여줄지는 취향 밖입니다. 순서와 분량은 방문자가 판단하는 순서를 따라갑니다. "메인에 다 넣어주세요"가 나오는 이유는 대표님에게 전부 중요하기 때문인데, 방문자는 자기 질문 하나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항목마다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 이걸 지우면 방문자가 결정을 못 하는가? 못 한다면 남기고, 그래도 결정할 수 있다면 아래로 내립니다. 이 판단의 출발점인 1순위 방문자를 정하는 방법은 브랜드 런칭, 디자인보다 먼저 정해야 하는 것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2. 어떤 단어로 쓸지도 취향 밖입니다. 사이트의 문장은 대표님의 어휘가 아니라 상대의 어휘로 씁니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정확한 용어일수록 처음 온 사람에게는 걸림돌이고, 그 사람이 검색창에 치는 말과도 다릅니다. 새로 지어내지 말고 실제 문의와 상담에서 상대가 쓴 표현을 그대로 옮기십시오. 어떤 설명을 미리 적어 둬야 하는지는 상담마다 같은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면에서 다뤘습니다.
  3. 인상과 재료는 취향 안입니다 — 대신 규칙으로 바꿔서 넘기십시오. 색, 서체, 사진의 결, 문장의 온도는 대표님이 정하는 게 맞습니다. 여기까지 남의 기준으로 정하면 어디서 본 듯한 화면이 됩니다. 다만 "이런 느낌"이라는 말로 넘기면 재현되지 않습니다. 쓰는 색은 몇 개인지, 서체는 몇 종 몇 굵기인지, 사진은 직접 찍은 것만 쓰는지 — 이렇게 셀 수 있는 형태로 바꿔야 다음 페이지에서도 같은 인상이 나옵니다. 규칙이 적을수록 화면의 급이 올라간다는 이야기는 돈은 들였는데 싸 보이는 사이트에 있습니다.
  4. 의견이 갈리면 문장의 형식을 바꾸십시오. "제가 보기엔 별로예요"는 다음 행동을 만들지 못합니다. 같은 지적을 "처음 온 사람이 이 화면에서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못 찾습니다"로 바꾸면, 그건 확인할 수 있는 주장이 됩니다. 화면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보여 주고 물어보면 되니까요. 취향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취향을 확인 가능한 문장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옮겨지지 않는 지적은 대개 그 자리에서 접어도 되는 지적입니다.

이 네 가지를 적용하면 회의에서 오가는 말의 성격이 바뀝니다. 누구 감각이 더 나은지를 겨루는 대화에서, 처음 온 사람이 이 화면에서 무엇을 하게 되는지를 맞추는 대화로 바뀝니다. 후자는 결론이 납니다. 전자는 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세요

최근에 주고받은 수정 요청 목록을 열어 놓고 다섯 줄을 짚어 보세요.

  • 요청 하나하나를 "확인할 수 있는 문장"으로 다시 쓸 수 있는가?
  • 이 화면의 1순위 방문자가 누구인지 한 문장으로 적혀 있는가?
  • 각 요소마다 "지우면 방문자가 결정을 못 하는가"를 물어봤는가?
  • 사이트의 문장이 우리 어휘인가, 문의에서 상대가 쓴 어휘인가?
  • 색·서체·여백이 셀 수 있는 규칙으로 적혀 있는가, 느낌으로만 있는가?

첫 줄에서 다시 쓰기가 안 되는 요청이 절반을 넘는다면, 지금 진행 중인 건 사이트 수정이 아니라 취향 조율입니다. 순서를 바꾸십시오 — 기준을 먼저 적고, 그다음에 화면을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그럼 제 취향은 아무 쓸모가 없나요?+
반대입니다. 색·서체·사진의 결·문장의 온도는 대표님 취향이 자산입니다.
여기까지 남의 기준으로 정하면 어디서 본 듯한 화면이 됩니다.
다만 순서와 분량, 단어 선택은 방문자 쪽 기준으로 정합니다.
주변에 보여주면 의견이 다 다릅니다+
그 사람이 1순위 방문자인지부터 보십시오. 가족·동료·동종업계는 대개 아닙니다.
물어야 한다면 "어떠세요" 대신 "이 화면만 보고 뭘 하는 곳 같은지",
"다음에 뭘 하면 될 것 같은지"를 물으세요. 인상이 아니라 이해를 묻는 질문입니다.
데이터가 없는 신규 브랜드는 뭘 근거로 정하나요?+
통계는 없어도 관찰은 있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질문, 상대가 꼭 확인하려던 것, 비교 대상으로 언급된 곳.
그것마저 없으면 가정을 세우되 "가정"이라고 적어 두십시오.
취향으로 정한 결정은 확인이 안 되지만, 가정으로 정한 결정은 나중에 확인됩니다.

밑그림은 시안을 보여드리기 전에, 무엇을 무엇으로 정할지부터 먼저 적습니다.
지금 사이트가 기준 위에 서 있는지 취향 위에 서 있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셀프 체크리스트로 짚어 보세요 — 3분이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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