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길어진 자리는,
확신이 없는 자리입니다
강동욱 — 밑그림 대표 · 기획 우선 웹 스튜디오
사이트 글이 길어지는 건 대개 문장력 문제가 아닙니다. 보여줄 것이 없는 자리를 말이 대신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이는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읽어야 할 지도에 가깝습니다. 어느 문단이 부풀었는지를 보면, 우리가 아직 확신이 없는 지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문장이 부풀어 오르는 세 자리
첫째는 보여줄 것이 아직 없는 자리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브랜드에는 후기도 사례도 실적도 없습니다. 그 빈칸을 비워 두기가 불안하니 문장이 들어갑니다. 한 줄로 안 되니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미덥지 않아 배경 설명이 붙고, 결국 문단 하나가 됩니다. 쓰는 사람은 성실하게 채웠다고 느끼지만, 읽는 사람에게 남은 건 확인할 수 없는 말 여러 줄입니다.
둘째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자리입니다. 누구를 받을지, 어디까지 하고 어디부터 안 하는지, 가격을 어떻게 낼지가 정해지지 않으면 모든 경우를 덮는 문장을 쓰게 됩니다. 모든 경우를 덮으려면 문장은 길어질 수밖에 없고, 길어질수록 어느 경우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습니다. 대상이 좁혀진 페이지의 문장이 짧은 건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덮어야 할 경우의 수가 적어서입니다.
셋째는 반론이 무서운 자리입니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같은 문구가 여기서 나옵니다. 쓸 때는 정직하려는 마음이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정보가 아니라 톤으로 전달됩니다. 자기 말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문장으로 읽히는 겁니다.
그리고 길이는 그 자체로 값을 치릅니다. 방문자는 글이 길다고 더 오래 읽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장이 늘어날수록 어디가 중요한지에 대한 표시가 사라집니다. 열 줄 중 두 줄이 판단 재료였다면, 그 두 줄은 나머지 여덟 줄 사이에 묻힙니다. 그래서 정성껏 늘려 쓴 페이지가 대충 쓴 페이지보다 덜 읽히는 일이 생깁니다.
부풀어 오른 자리가 곧 우리가 확신 없는 자리입니다.
줄이는 게 아니라 채우는 네 가지
- 길어진 문단에 표시부터 합니다. 문장을 다듬기 전에 할 일입니다. 페이지를 처음부터 읽으면서 한 가지를 말하는 데 세 문장 넘게 쓴 자리에 표시를 하고, 그 옆에 한 줄씩 적어 보세요 — "여기서 내가 뭘 못 보여줘서 말로 채웠나." 대개 서너 군데로 좁혀지고, 그 서너 군데가 이 사이트에서 실제로 손볼 지점 전부입니다.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일보다 훨씬 적은 일이고 효과는 더 큽니다.
- 문장이 하려던 일을 물건에 넘깁니다. 설명 세 문단이 필요한 자리는 대개 보여줄 것 하나로 끝납니다. 진행 순서를 다섯 줄로 설명하는 대신 순서표 하나, 결과물의 수준을 형용사로 설명하는 대신 실제 작업물 한 장, 비용 구조를 길게 해명하는 대신 항목이 적힌 견적 예시 하나. 말은 읽는 사람이 믿어 줘야 성립하지만 물건은 그냥 확인됩니다. 어떤 사진이 그 일을 해내는지는 사진 한 장이 문단 셋을 이깁니다에서 다뤘습니다.
- 보험 문구를 조건으로 바꿉니다. 이 둘은 겉보기에 비슷하지만 정반대입니다. 보험 문구는 가능성만 열어 두고 아무것도 특정하지 않습니다. 조건은 되는 경우와 안 되는 경우를 지목합니다. 판별법은 지워 보는 겁니다 — 그 문장을 지웠을 때 독자가 잃는 정보가 있으면 조건이고, 없으면 군더더기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는 지워도 잃는 게 없고, "이 조건이면 되고 저 경우는 저희가 안 합니다"는 지우면 잃습니다. 조건을 제대로 붙이는 게 왜 신뢰를 올리는지는 기능은 다 적혀 있는데, 결정이 안 되는 이유에 적어 뒀습니다.
- 끝내 안 줄어드는 문단은 글에서 손을 뗍니다. 세 가지를 다 해도 짧아지지 않는 자리가 남습니다. 그건 문장 문제가 아니라 결정 문제입니다. 누구를 주 고객으로 볼지, 어디까지가 우리 일인지, 가격을 공개할지 말지 — 이게 안 정해진 채로는 어떤 표현을 써도 문단이 다시 부풉니다. 이때는 문장을 만지지 말고 결정을 먼저 내리는 편이 빠릅니다. 런칭 전에 무엇부터 정해야 하는지는 브랜드 런칭, 디자인보다 먼저 정해야 하는 것에 정리해 뒀습니다.
네 가지를 마치면 기준 하나가 남습니다. 짧은 글이 좋은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이 결정에 쓸 수 있는 문장만 남았을 때 결과적으로 짧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목표는 분량이 아니라 문장당 쓸모입니다. 남은 문장이 전부 방문자의 판단에 쓰인다면, 그 페이지는 길어도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세요
대표님 사이트에서 가장 긴 문단 하나를 골라 다섯 줄을 짚어 보세요.
- 이 문단이 말하려는 것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무엇인가?
- 나머지 문장들은 그 한 문장을 못 믿을까 봐 붙인 것인가?
- 이 자리에 문장 대신 놓을 수 있는 물건(사진·순서표·실제 산출물·예시)이 있는가?
- 지워도 독자가 잃는 정보가 없는 문장이 몇 줄인가?
- 줄이려 해도 안 줄어든다면, 아직 안 정해진 결정이 무엇인가?
다섯 번째 줄에서 답이 떠올랐다면, 그 문단은 글쓰기로 고칠 수 있는 문단이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글이 길면 정성스러워 보이지 않나요?+
우리 경우에만 해당하는 한 줄은 짧아도 공들인 티가 나고, 어느 브랜드에 갖다 놔도 말이 되는 문장은 길수록 채워 넣은 티가 납니다.
게다가 길이가 늘면 읽는 사람이 자기에게 필요한 줄을 찾는 비용도 같이 늡니다 — 그 비용은 처음 온 사람일수록 안 치릅니다.
설명이 정말 많이 필요한 복잡한 서비스인데도 줄여야 하나요?+
"여기가 내 경우를 다루는 곳인가"를 판단하는 데 쓰이는 문장은 앞에 짧게, 검토 단계에서 필요한 상세는 하위 페이지나 뒤쪽에 충분히 둡니다.
복잡한 서비스일수록 두 종류의 독자가 섞여 들어오기 때문에, 한 화면에 겹쳐 쓰면 양쪽 다 놓칩니다. 자리 나누는 기준은 메인에 다 넣으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에 있습니다.
조건이나 예외를 적는 것도 자신 없어 보이는 건 아닌가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는 지워도 독자가 잃는 정보가 없고, "이 조건이면 되고 저 조건이면 안 됩니다"는 지우면 정보가 사라집니다.
지웠을 때 잃는 것이 있으면 조건이고, 없으면 군더더기입니다.
밑그림은 문장을 다듬기 전에, 그 문장이 대신 채우고 있던 자리에 무엇을 놓을지부터 정합니다.
지금 사이트에서 말이 물건을 대신하고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궁금하다면 아래 셀프 체크리스트로 짚어 보세요 — 3분이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