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사이트에서 방문자는,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업을 상대하는 사이트가 소비자 사이트 문법을 그대로 쓰면 어긋납니다. 톤이 딱딱해야 해서가 아닙니다. 결정이 화면 앞이 아니라, 방문자가 자리를 옮긴 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화면 앞에 있는 사람은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소비자 사이트는 구조가 단순합니다. 화면 앞에 있는 사람이 곧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마음이 움직이면 그대로 구매가 됩니다. 첫 화면에 큰 문구를 걸고, 분위기 있는 영상을 깔고, 눈에 띄는 버튼 하나를 두는 방식이 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설득의 시작과 끝이 같은 화면 안에서 끝납니다.

제조, 부품 납품, 설비, 기업 대상 서비스 — 한 건이 크고 상대가 회사인 일은 이 구조가 아닙니다. 화면 앞에 있는 사람은 대개 담당자입니다. 구매 담당일 수도 있고, 그 일을 맡게 된 실무자일 수도 있고, 위에서 알아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그 사람의 일은 사는 것이 아니라, 후보를 좁혀 위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우리 사이트를 보고 마음에 들어 해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이 진짜 결정입니다. 그 사람은 자리를 옮깁니다. 팀장에게 보고하거나, 회의에서 후보 세 곳을 나란히 놓고 설명하거나, 결재 문서에 몇 줄을 씁니다. 그 자리에 우리 사이트는 없습니다. 우리 대신 그 담당자가 말합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B2B 사이트가 어긋납니다. 화면은 방문자에게 인상을 주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그 인상이 그 사람 입을 통해 옮겨지는 일입니다. 인상은 옮겨지지 않습니다. 회의실에서 "사이트가 세련됐더라고요"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옮겨지는 것은 숫자, 조건, 범위, 이름 같은 것들입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담당자가 지는 위험이 개인 소비자와 다릅니다. 개인은 잘못 사면 자기 돈을 잃고 끝입니다. 담당자는 고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왜 거기로 정했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납기가 밀려도, 품질이 어긋나도, 중간에 연락이 안 되어도 그 질문은 담당자에게 옵니다. 그래서 담당자는 가장 좋아 보이는 곳을 고르는 쪽이 아니라 설명하기 쉬운 곳을 고르는 쪽으로 기웁니다. 우리를 후보에 넣는 순간 자기가 감당해야 할 설명이 늘어난다면, 인상이 좋았더라도 명단에서 조용히 빠집니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왜 뺐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회의실에 가는 것은 우리 사이트가 아니라,
담당자의 설명입니다.
사이트가 할 일은 그 설명을 대신 써 주는 것입니다.

담당자가 대신 설명할 수 있게 만드는 다섯 가지

방향이 정해지면 할 일은 분명해집니다. 방문자를 감동시키는 화면이 아니라, 방문자가 들고 나갈 수 있는 화면을 만드는 것입니다.

  1. 독자를 담당자 한 명으로 정하고, 그가 위에 올릴 한 장을 먼저 그립니다. 사이트 구조를 짜기 전에 종이 한 장을 상상해 보세요. 담당자가 우리를 후보로 올릴 때 쓰는 한 장입니다. 거기에는 무엇이 들어갈까요. 우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한 줄, 이번 건에 해당하는 범위와 조건, 대략의 금액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회사가 실재한다는 확인 재료, 연락처. 그 한 장에 들어갈 항목이 곧 사이트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한 장에 안 들어가는 것은 사이트에서 뒤로 미뤄도 됩니다. 첫 화면에 무엇을 둘지 매번 다투게 된다면 순서를 정하는 기준이 없다는 뜻인데, 그 이야기는 메인에 다 넣으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에 정리해 뒀습니다.
  2. 정보를 옮길 수 있는 형태로 둡니다. 이게 실무에서 가장 자주 무너지는 지점입니다. 사양표를 이미지로 그려서 올려 두면 담당자는 그 숫자를 복사할 수 없습니다. 옮겨 적어야 하고, 옮겨 적다 틀리면 자기 책임입니다. 제품이나 서비스 항목이 전부 한 페이지 안에 접혀 있으면 특정 항목만 링크로 보낼 수 없습니다. 회의 자료에 "저희 홈페이지 들어가서 아래로 내리면 나옵니다"라고 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 숫자와 조건은 이미지가 아니라 글자로, 항목마다 고유한 주소로, 자료가 필요하면 내려받을 파일과 함께 같은 내용을 웹에도. 검색 엔진과 AI가 우리 정보를 읽어 가는 조건도 정확히 같습니다.
  3. 비교 축을 우리가 만들어 둡니다. 담당자는 어차피 비교표를 만듭니다. 후보 서너 곳을 가로로 놓고 세로에 항목을 적습니다. 우리가 비교 축을 안 주면 그 사람은 자기가 만들 수 있는 축으로 표를 채웁니다. 어느 사이트에서나 뽑아낼 수 있는 항목, 즉 가격과 납기 정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하는 것은 표에 등장하지도 못합니다. 대응 가능한 규격과 범위, 처리할 수 있는 수량과 조건, 대응 못 하는 구간, 품질을 확인하는 방식 — 이런 항목을 우리가 먼저 표로 정리해 두면 담당자가 그것을 그대로 가져다 씁니다. 비교표의 항목을 정하는 쪽이 비교에서 유리합니다.
  4. 거를 수 있게 만듭니다. 담당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고르기가 아니라 거르기입니다. 열 곳을 세 곳으로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이트가 무엇이든 상담해 달라고만 적어 두어 거를 근거를 주지 않습니다. 담당자 입장에서 이런 곳은 전화해서 물어봐야 하는 곳이고, 물어봤다가 안 맞으면 시간만 버린 것이 됩니다. 그래서 되는 조건과 안 되는 조건을 먼저 적는 편이 유리합니다. 이 규격까지 대응합니다, 이 수량 아래는 받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다른 곳이 낫습니다. 문의가 줄어 보이지만 실제로 줄어드는 것은 맞지 않는 문의이고, 남은 문의는 이미 조건을 확인하고 들어온 것입니다. 이렇게 조건을 미리 적는 일이 왜 손해가 아닌지는 가격을 안 적으면, 아낀 게 아니라 미룬 겁니다에서 가격을 예로 다뤘습니다.
  5. 문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적습니다. 담당자는 일정 안에서 움직입니다. 언제까지 후보를 정리해야 하고, 언제 결재를 올려야 합니다. 그래서 문의 버튼을 누르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견적을 받으려면 무엇을 보내야 하는지(도면인지, 수량인지, 사양서인지), 받는 데 대략 얼마나 걸리는지, 누가 응대하는지, 그 전에 상담이 필요한지. 이게 안 적혀 있으면 담당자는 우리를 일정에 넣을 수 없고, 일정에 못 넣으면 후보에서도 빠집니다. 이건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계획을 세울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다섯 가지의 공통점은 전부 화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형태라는 점입니다. 인상은 화면을 못 벗어나지만 조건과 숫자와 절차는 복사되고, 인용되고, 회의 자료에 붙습니다. 사양을 자세히 적는 것만으로는 왜 부족한지는 기능은 다 적혀 있는데, 결정이 안 되는 이유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여기서의 이야기는 사양을 늘리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사양이 옮겨질 수 있는 상태인가입니다.

오해하기 쉬운 부분을 하나 짚겠습니다. 소비자 사이트에서 가져오지 말아야 할 것은 구조이지 완성도가 아닙니다. 읽기 편한 글자 크기, 빠르게 뜨는 화면, 모바일에서 무너지지 않는 표, 어디를 눌러야 할지 헷갈리지 않는 동선은 상대가 회사여도 똑같이 필요합니다. 담당자도 사람이고 퇴근길에 휴대폰으로 봅니다. 가져오지 말아야 할 것은 큰 문구와 분위기 영상으로 첫 화면을 채우고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한참 아래에 두는 배치, 그리고 정보를 이미지 안에 그려 넣어 복사도 검색도 안 되게 만드는 습관입니다. 기업 사이트라고 촌스러워도 된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 잘 만들었다는 기준이 인상에서 옮겨짐으로 바뀌는 것뿐입니다.

신생 브랜드나 이제 막 기업 거래를 시작하는 곳이라면 이 축이 특히 유리합니다. 거래 이력은 시간이 있어야 쌓이지만, 대응 범위와 조건과 절차는 오늘 정해서 오늘 적을 수 있습니다. 담당자가 사내에서 우리를 설명할 때 필요한 것도 얼마나 오래 했는가만이 아니라, 이 건이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입니다. 뒤쪽은 첫 거래 전에도 답할 수 있습니다. 결과물이 비슷해 보이는 자리에서 판단이 어디서 갈리는지는 결과물이 비슷해 보일 때, 판단은 과정에서 갈립니다에서 더 다뤘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세요

사이트를 열어 두고, 담당자가 되어 다섯 줄을 짚어 보세요. 오늘 안에 후보 세 곳을 추려 위에 올려야 하는 사람의 눈으로 봅니다.

  • 사양·조건·범위가 글자로 적혀 있는가 — 이미지 안에 그려져 있지는 않은가?
  • 특정 제품이나 항목만 골라 링크로 보낼 수 있는가?
  • 후보를 비교할 항목을 우리가 표로 제시하고 있는가 — 아니면 가격과 납기만 뽑히는가?
  • 맞지 않는 조건이 한 줄이라도 적혀 있어, 방문자가 스스로 거를 수 있는가?
  • 견적까지 무엇을 보내야 하고 얼마나 걸리는지가 문의 버튼 앞에 적혀 있는가?

이 다섯 줄이 대부분 비어 있다면 — 지금 사이트는 방문자에게 인상은 남기지만 들고 나갈 것은 주지 않는 화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담당자는 그 화면을 닫고, 자기가 설명할 수 있는 다른 곳을 위에 올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B2B 사이트는 왜 소비자 사이트처럼 만들면 안 되나요?+
톤이 딱딱해야 해서가 아니라 결정이 일어나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사이트는 화면 앞의 사람이 곧 결정하는 사람이라 그 자리에서 마음이 움직이면 구매가 됩니다.
기업을 상대하는 일에서는 화면 앞의 사람이 대개 담당자이고, 그 사람의 일은 사는 것이 아니라 후보를 좁혀 위에 올리는 것입니다. 결정은 그 사람이 자리를 옮겨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설명할 때 일어납니다.
그래서 인상이 아무리 좋아도 옮겨질 수 없는 형태라면 회의에는 도착하지 않습니다. 사이트가 할 일은 방문자를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가 우리를 대신 설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담당자는 가장 좋은 업체를 고르지 않나요?+
담당자가 지는 위험이 소비자와 다릅니다. 개인은 잘못 사면 자기 돈을 잃고 끝이지만, 담당자는 고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왜 거기로 정했느냐는 질문을 사내에서 받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아 보이는 곳보다 설명하기 쉬운 곳으로 기웁니다. 설명하기 쉽다는 것은 대응 범위와 조건이 적혀 있고, 값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 수 있고, 회사가 실재한다는 확인 재료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것이 화면에 없으면 우리를 후보에 넣는 순간 담당자가 감당할 설명이 늘어납니다. 그러면 인상이 좋았더라도 조용히 명단에서 빠지고, 왜 뺐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디자인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나요?+
반대입니다. 가져오지 말아야 할 것은 구조이지 완성도가 아닙니다. 읽기 편한 글자 크기, 빠른 화면, 모바일에서 무너지지 않는 표, 헷갈리지 않는 동선은 상대가 기업이어도 똑같이 필요합니다. 담당자도 퇴근길에 휴대폰으로 봅니다.
가져오지 말아야 할 것은 큰 문구와 분위기 영상으로 첫 화면을 채우고 확인할 정보는 한참 아래에 두는 배치, 정보를 이미지 안에 그려 넣어 복사도 검색도 안 되게 만드는 습관입니다.
기업 사이트라고 촌스러워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잘 만들었다는 기준이 인상에서 옮겨짐으로 바뀌는 것뿐입니다.

밑그림은 화면을 예쁘게 만들기 전에, 방문자가 무엇을 들고 나가야 하는지부터 정하고 구조를 짭니다.
지금 사이트가 그 재료를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셀프 체크리스트로 짚어 보세요 — 3분이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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