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이 안 나오는 구간에,
대표님이 가장 많이 일합니다
강동욱 — 밑그림 대표 · 기획 우선 웹 스튜디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 제작을 시작했는데 화면이 안 나오는 구간은 진도가 안 나간 구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업체가 조용히 알아서 하는 구간도 아닙니다. 그 구간에 정해지는 것의 상당수는 대표님 쪽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이 구간을 건너뛴다고 결정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시안을 보는 자리로 옮겨 갈 뿐입니다.
화면부터 그리면 생기는 일
첫 시안이 일찍 나오면 진행이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생겼으니까요. 문제는 그 화면을 놓고 무슨 말을 할 수 있느냐입니다.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화면을 보면 할 수 있는 말이 좋다와 별로다 둘로 좁아집니다. 그리고 그 두 마디로는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비워 두면 무언가가 대신 들어옵니다. 대개는 최근에 본 다른 사이트입니다. 주변에서 던진 한마디도 같은 무게로 들어옵니다. 판단 기준이 없으면 가장 최근에 받은 인상이 기준 행세를 합니다. 취향이 문제가 아니라 취향밖에 남지 않은 상태가 문제라는 이야기는 취향대로 만들면 왜 안 되나 — 내 눈과 고객 눈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되돌아오는 경로도 여기서 생깁니다. 화면을 먼저 그리면 그 화면에 맞는 원고와 사진이 필요해집니다. 그런데 그 원고와 사진은 아직 없습니다. 없는 자리는 일단 임시 문구로 채워지고, 나중에 실제 내용이 들어오면 분량이 맞지 않아 화면을 다시 손봐야 합니다. 디자인을 두 번 하는 일은 대개 여기서 시작됩니다.
시안 검토 자리에서 느낌으로 내려질 뿐입니다.
조사는 업계 공부가 아닙니다
이 구간을 "조사"라고 부르면 오해가 생깁니다. 웹 업체가 대표님 분야를 공부해서 대표님보다 잘 알게 되는 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일어날 필요도 없습니다. 이 구간에서 하는 일은 이미 대표님이 알고 있는 것을 화면에 쓸 수 있는 형태로 꺼내는 일입니다.
막 시작한 브랜드라도 재료가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흩어져 있습니다. 지인에게 설명하면서 매번 반복했던 문장, 상담에서 늘 같은 자리에서 나오는 되물음, 예전에 보냈던 견적서에서 설명이 길어졌던 항목, 거절당했을 때 들었던 이유. 이런 것들은 보통 메신저와 메모와 기억에 남아 있고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구간의 질문이 어느 쪽인지가 중요합니다. 업계 일반론을 묻고 있다면 그건 업체가 자기 공부를 대표님 시간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대표님만 답할 수 있는 것을 묻고 있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간에 실제로 꺼내는 것
순서대로 다섯 가지를 봅니다. 업체가 안 물어보면 대표님이 먼저 꺼내셔도 됩니다.
- 이미 온 사람들이 한 말. 문의와 상담에서 반복되는 질문, 계약 직전에 늘 걸리는 지점, 가격을 말한 뒤에 돌아오는 반응. 아직 문의가 없는 단계라면 지인이나 투자·협업 자리에서 설명했을 때 받은 되물음이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목록이 사이트에서 답해야 할 질문의 목록이 됩니다. 화면을 채울 소재를 밖에서 찾을 필요가 줄어듭니다.
- 방문자가 우리 옆에 놓고 보는 화면. 경쟁사 분석이 아니라, 우리를 검토하는 사람이 같은 시기에 열어 보는 후보들입니다. 볼 것은 디자인의 우열이 아니라 그 화면들이 답해 준 것과 끝까지 안 답한 것입니다. 모두가 비워 둔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가 우리 화면의 기회이고, 모두가 답한 것을 우리만 안 적어 두면 그건 비교에서 빠지는 이유가 됩니다.
- 고객이 실제로 쓰는 단어. 우리가 쓰는 이름과 고객이 검색창에 넣는 말은 대개 다릅니다. 업계 안에서만 쓰는 표현으로 화면을 채우면 읽는 사람이 자기 얘기인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용어가 실력이 아니라 독자를 고른다는 이야기는 전문용어를 쓰면 전문가로 보일까에 정리해 뒀습니다.
- 가진 재료의 재고. 쓸 수 있는 사진, 공개해도 되는 사례, 숫자로 말할 수 있는 것, 이름을 걸 수 있는 이력.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있는 것 목록이 아니라 없는 것 목록입니다. 사진이 없다는 사실을 첫 구간에 알면 촬영을 준비할 시간이 생기고, 시안이 나온 뒤에 알면 그때부터 전체가 기다립니다. 무엇이 언제까지 필요한지가 일정의 절반을 정한다는 이야기는 제작 기간은 누가 정하나에 있습니다.
- 결정하는 사람과 결정의 순서.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사람이 한 명인지, 화면을 보고 의견을 주는 사람이 몇인지, 어느 것부터 확정할지. 이것이 안 정해지면 시안 검토가 의견 수집이 되고, 의견은 모일수록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메인에 다 넣어 달라는 요청이 왜 나오는지는 메인에 다 넣어 달라는 말의 뜻에서 다뤘습니다.
이 다섯 가지가 모이면 화면을 그리기 전에 기준 문장 몇 줄이 써집니다. 이 사이트의 1순위 방문자는 누구이고, 그 사람이 여기서 할 행동 하나는 무엇이며, 그 사람이 결정 전에 확인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브랜드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 세 줄을 먼저 잡는 이야기는 브랜드 런칭, 디자인보다 먼저 정해야 하는 것에 적어 뒀습니다.
길게 하는 게 좋은 것도 아닙니다
반대 방향의 실수도 있습니다. 자료를 계속 모으면서 시작을 미루는 경우입니다. 이 구간이 끝나는 조건은 다 알았을 때가 아니라 판단 기준이 써졌을 때입니다. 위의 세 줄이 나오면 다음으로 넘어가도 됩니다. 자료가 더 쌓이는데 그 세 줄이 안 써진다면 부족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결정입니다. 그 상태에서는 조사를 더 해도 같은 자리에 머뭅니다.
이 구간을 건너뛰어도 무리가 없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쓸 틀이 이미 정해져 있고, 들어갈 원고와 사진이 준비돼 있고, 결정자가 한 명이라 그 자리에서 확정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페이지 수가 적고 하는 일이 한 줄로 설명되는 사이트라면 더 그렇습니다. 다만 이 셋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건너뛴 시간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뒤에서 되돌아옵니다.
업체를 고르실 때 이 구간을 보는 가장 간단한 신호도 있습니다. 첫 상담에서 업체가 우리에게 무엇을 물었는가입니다. 예산과 기간과 원하는 느낌만 묻고 견적을 내놓는다면 그 견적에는 이 구간이 안 들어 있는 것이고, 그 일은 나중에 대표님 책상으로 옵니다. 같은 기준으로 포트폴리오를 읽는 법은 포트폴리오에서 봐야 할 것에 있습니다.
오늘 확인해 보세요
제작을 시작하기 전이든, 이미 진행 중이든 같은 목록입니다.
- 상담·문의에서 반복해서 받는 질문을 다섯 개 이상 적을 수 있는가?
- 우리를 검토하는 사람이 같이 열어 볼 후보 사이트를 서너 곳 대 볼 수 있는가?
- 지금 쓸 수 있는 사진과 사례가 무엇이고,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목록으로 적었는가?
- 화면을 최종 확정하는 사람이 한 명으로 정해져 있는가?
- 이 사이트의 1순위 방문자·행동 하나·확인하려는 것을 세 줄로 쓸 수 있는가?
마지막 줄이 안 써진다면 시안을 기다리기보다 그 세 줄부터 잡는 편이 빠릅니다. 세 번째 줄에서 없는 것이 많이 나오는 건 막 시작한 브랜드에서는 정상입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언제 아느냐입니다. 지금 알면 준비할 시간이 되고, 시안이 나온 뒤에 알면 그때부터 전체가 기다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조사 구간 없이 바로 디자인부터 하면 안 되나요?+
그 자리에서는 기준이 없으니 판단이 "좋다·별로다"로 좁아지고, 최근에 본 다른 사이트가 기준을 대신합니다.
바로 시작해도 되는 경우는 — 쓸 틀이 정해져 있고, 원고와 사진이 준비돼 있고, 결정자가 한 명일 때입니다.
조사라고 해도 저희 업을 웹 업체가 얼마나 알겠습니까?+
메신저·메모·예전 견적서에 흩어져 있는 것을 화면에 쓸 수 있는 형태로 꺼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질문이 업계 일반론 쪽이면 시간이 새는 것이고, 대표님만 답할 수 있는 것을 묻고 있으면 제대로 가는 것입니다.
조사는 언제 끝났다고 보나요?+
1순위 방문자는 누구인가 · 여기서 할 행동 하나는 무엇인가 · 결정 전에 확인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 이 세 줄이 나오면 됩니다.
자료가 쌓이는데 세 줄이 안 써진다면 부족한 건 정보가 아니라 결정입니다.
밑그림은 화면을 그리기 전에 판단할 기준부터 세우고, 그 기준으로 시안을 검증하는 웹 스튜디오입니다.
지금 우리 사이트가 기준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짚어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셀프 체크리스트로 확인해 보세요 — 3분이면 나옵니다.